갈 데까지 간 여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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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까지 간 여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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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데까지 간 여자 10


이래저래 일들이 많았던 겨울방학도 거진 끝나갈 무렵 어쩌다가 찬희랑 둘이서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아내가 과에서 종강 엠티를 다녀온지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 장난 아니에요. 우리 과가 이렇게 활발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인문학의 위기 따위 웃기지 말라 그래요.” 


갈 데까지 간 여자 10

과 분위기 이야기를 꺼내자 찬희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한 선생님이나 학과장은 바깥 사업하고, 자기들끼리 알력다툼하느라 여전하나 보던데. 대학원 애들이 요즘 불타올랐나 보구나.” 

“그 양반들이야 그게 직업이니까요. 어차피 학교는 그 노인네들이 아니라 세미나하는 대학원생들이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봤자 생기는 게 없어서 문제지만.” 

“생기는 것 있잖아.” 

찬희가 웃는다. 나는 ‘나도 다 알거든!’ 하는 무언의 메세지를 담아 따라 웃는다. 

“그쵸. 선영이 누나 덕이에요. 요즘 용민이, 태준이가 장난 아니에요. 완전 필 받았다니까요. 감도 살아서 같이 세미나 해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형도 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찬수도 그렇고요.” 

“찬수도?” 

찬수는 사정이 생겨서 종강 엠티에 오지 못 했었다. 아내는 찬수를 좋아했다. 그래서 녀석이 엠티에 빠진 것을 두고 몇 번, ‘찬수가 빠져서 아쉬웠겠네?’ 아내를 놀린 적이 있다. 

예, 하고 끄덕이는 찬희가 슬쩍 내 시선을 피한다. 

나는 직감적으로, 찬수 역시 그 사이에 내 아내와 모종의 썸씽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아내는 찬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참, 그래서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개강 전에 엠티 한 번 더 다녀와야지 싶어요. 찬수가 그 날 빠졌다고 많이 아쉬워하더라고요.” 

찬희의 말과 따로, 나는 집에 가면 아내한테 찬수 일을 한 번 추궁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참이다. 

“선영이 누나도 올 수 있죠?” 

“글세, 그건 선영이한테 물어봐야지.” 

“올 거예요.” 

“멤버는?” 

“지난번하고 거진 같을 거예요. 찬수 정도가 끼겠지.” 

“여자애들은? 소희 같은 애들은?” 

찬희는 ‘뭐야, 선수끼리 왜 이래?’ 하는 식으로 픽 웃는다. 과에 여학생들이 없는 건 아닌데, 하나같이 남자애들한테 인기가 있을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저 녀석들이 어떻게든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또 있을 엠티에 다른 여자애들이 끼지 못 하게끔 만들리라 생각한다. 

나는 묻지 않는다. 이미 아내를 통해서 전달해 들은 이야기들, 뒤늦게 세미나에 불타오른 녀석들이 왜 굳이 밤늦게까지 세미나실에 남아있는지, 세미나가 끝나면 늦은 시각 세미나실에서 아내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곤 하는지, 세미나실뿐 아니라 학회 방과, 심지어 교내 화장실에서...... 

찬희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저 녀석도 내가 알고 있단 것을 알까? 과의 불타는 학구열 뒤에 숨은 이야기들은, 사실 다른 경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다. 교수들이나 여학생들은 상상도 하지 못 할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아내가 내게 낱낱이(찬수 일을 미루어 보자니 ‘낱낱이’는 아닐지 모르겠단 생각도 들지만) 이야기해주었다. 때로는 내가 슬쩍 부추기기도 하였다. 어차피 아내의 마지막 학기, 우리는 갈 데까지 가 보기로 합의를 했다. 

“근데 선영이 누나가 학교 관둔다는 것 진짜예요?” 

“응. 이번 학기까지야. 한 선생한테는 아직 이야기 안 한 것 같던데.” 

“아쉽네요.” 

찬희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얼굴을 한다. 나는 웃는다. 

“그러니까 선영이한테 잘 해 줘. 니네 지금처럼 선영이 자주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예.” 

찬희가 말한다. 

“잘해줄 거예요.” 

‘잘해준다’라는 말은 이 경우 또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지, 또 세상일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상대적인 것인지! 교내 남자화장실에 불러다 오랄을 시키고 정액을 먹게 하는 일 따위를 ‘잘해준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사회적으로 흔치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 세상살이가 재미있다. 살면 살수록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알게 된다. 생각지도 못 했던 일들을 스스로 겪게 된다. 

“참 진용이형이 요즘...... 형 알아요?” 

찬희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나는 금방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데, 속으로 오늘의 술자리가 어쩌면 그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내가 보는 게 오랜만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찬희는 내 아내와 관련된 일에서 이미 주도권을 잃었다. 찬희와 아내의 선배이자 재수를 해서 나보다 한 살이 많은 진용이가 한 때 찬희가 차지했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응, 알아.” 

나는 짧게 답한다. 

아내는 내 것이다. 저 녀석들은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아내의 살을 맛보는 쉬파리들일 뿐이다. 쉬파리들끼리의 영역 다툼에 내가 굳이 끼어들 이유는 없다. 

종강 엠티 후 처음으로 아내가 학교에 간 날, 나는 그녀가 귀가한 후 함께 밤새도록 뒹굴기로 약속을 했었다. 헌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했다. 일하는 곳에서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술자리가 생겨 버렸다. 낮에 전화해서 그 이야기를 하자 아내는 ‘뭐야, 잔뜩 기대했구먼!’ 툴툴거렸다. 나름 무뚝뚝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바뀌어 간다. 내 입장에선 서른이 넘은 아내가 예전과 달리 너무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다. 

“미안. 오늘은 애들이랑 놀아.” 

“애들이랑 놀라니?” 

“알잖아. 당신한테 많이 많이 싸주는 애들.” 

“또 못된 소리 한다! 신성한 학교에서 말이야.” 

아내는 아무렇잖은 듯 핀잔을 주고, 나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오 분도 안 되어 다시 전화가 온다. 

“저기 자기, 아까 한 말 말이야.” 

“응?” 

“신경 쓰여? 내가 학교에 있는 것 말야. 아 물론 다음 학기까지만 있다가 영영 그만둘 거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내가 걔들하고......” 

“별 소리 다 한다. 내가 그러지 않는다는 것 알잖아. 한두 번 겪어 봤나.” 

“그래도.” 

이쯤에서 나는 전화기를 든 채 잠시 자리를 옮겨야 한다. 더 조용하고, 노골적일 수 있는 곳으로. 

“내 판타지가 뭔지 알아? 언제 한 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판타지?” 

“자기가......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의 정액을 한 번씩 받아줘 보는 거야. 내 친구들도, 후배들도, 선배들도 한 번씩 자기 거기에다 싸 보는 거지. 자기가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남자를 행복하게 해 주는지 내 주변 사람들이 다들 알게 되는 거야. 나는 그 사람들한테 당당하게 자랑해. 니들을 그렇게 미치게,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 준 여자가 바로 내 와이프거든! 하고 말이야.” 

전화기 저편에서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 그러다가. 

“애들이 날 묘한 눈으로 보는 것 있지.” 

아내가 말한다. 

“별 일 없었던 것처럼 대하고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했지만, 뭔가 달라. 당연한가? 애들이 나한테 또 뭔가를 부탁하고 싶은 눈치야. 그리고 나는...... 내가 해주어도 되는 거야? 걔들한테. 걔들이 원하는 일을?” 

“사랑해.” 

내 말에 전화기 저편에선 또 한참동안 말이 없다. 내 가슴속으로 비리고 아픈 것이 스쳐지나간다. 아내를 다른 사람한테 줄 때마다 내가 그저 흥분만이 되고 아무런 아픔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이게 대단히 위험한 게임이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위기와 자극이 없다면 인생은 무덤행 편도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자극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어쩌면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일 수 있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연애 시절 마냥 수화기 양쪽에서 서로 다음 말을 찾지 못 한 채 가슴을 졸이는 이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나도 사랑해.” 

아내가 말한다. 

진용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고, 대학 시절에는 음악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밴드 친구와 함께 학교 근처에서 작은 지하 호프집을 차렸다. 석사 과정 때에 나는 패거리들이랑 그 호프집을 숱하게 드나들었고, 90년대 특유의 괴이한 일탈 분위기에서 벼라별 장난질도 많이 쳤었다. 당시 아직 학부생이던 아내를 종종 데려가기도 했다. 아내는 결혼 전 내 소개로 거기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었다. 

진용이는 그때부터 내심 내 아내를 좋아했다. 아내도 진용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당시엔 아내가 나랑 사귀기 전이었기 때문에 진용이가 액션을 취했다면 우리들의 역사는 지금과 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용이는 당시에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냥 여자친구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아이였기 때문에 연정보다 강한 의리로 맺어져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적마다 괜히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당시에는 아내도 나도 전혀 눈치 채지 못 했던 일이다. 그걸 이제 와서 어떻게 아냐 하면, 진용이가 말했기 때문이다. 아내한테, 종강 엠티 이후 처음 학교에서 만난 날에 말이다. 

진용이 역시 종강 엠티에 참여하였고, 그가 뒤늦게 들어온 대학원의 학우들과 함께 아내를 범하였다. 아내는 그 날의 일들 중에서도 진용이가 그녀의 활짝 열린 아랫도리 앞에서 ‘선영아, 네 거기 정말 예쁘다!’ 멍하니 중얼대던 광경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었다. 

“어머나, 전혀 몰랐네. 인제 와서 지어내는 것 아니야, 선배?” 

그 날, 학교 일이 끝나고 진용이가 아내를 태워다준다고 했다. 전에 없는 일이었고, 평소라면 아내 쪽에서 사양했을 것이다. 마침 아내는 나와의 약속이 취소되어 심심한 참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차에 올랐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다른 이유도 있었지 싶다. 나는 전화로 약속을 취소하면서 ‘학교 애들이랑 놀아도 좋아’라 했다. 하지만 엠티 날 일박 이일로 아내의 몸을 공유한 아이들은 세미나 당시 다른 일정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고, 오히려 자기들 쪽에서 쑥스러운지 야릇한 눈길만을 보낼 뿐 몸을 사리더란다. 심지어 인사말로라도 엠티 때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긴장을 잔뜩 했다가 허무해진 아내한테 거리낌 없이 다가온 건 진용이 뿐이었다. 

그렇게 탄 차가 교통체증이 걸려 한동안 길에 섰을 때, 진용이가 틀어놓았던 음악을 슬그머니 줄이더니 그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다. 농담처럼,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아냐. 내가 그런 걸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겠냐? 인제 와서.” 

아내는 수긍한다. 아내가 학부생 아르바이트생이던 시절 진용이의 애인이었던 여자는 지금 다른 남자의 아내이자 애엄마가 되었다. 

그들은 그때까지 엠티 때의 일을 일절 입 밖에 내지 않고 있었다. 결국 그 금기 아닌 금기를 깬 건 아내 쪽인데, 아내의 말에 따르면 화제가 옛날이야기로 감으로 인해 유미 언니(진용이의 옛날 여자친구 말이다) 이야기가 나올까봐, 진용이가 그 여자의 일로 새삼 상심할까봐 그랬다고 한다. 

“그럼 그 날 충격 받았겠네. 선배.” 

진용이는 이십대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를, 십 년 가까이가 지나 그것도 과의 선후배 남자들과 함께 돌렸던 것이다. 

“응, 좀 그랬어. 놀랐지.”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러시아워의 시내 거리는 색색으로 번뜩거리고. 

“놀란 것치고는 잘 하던걸, 근데.” 

아내가 배시시 말하였다. 이런 때 보면 아내는 믿어지지 않을 만치 대담한데, 실은 마음이 담대해서가 아니라 어색한 분위기를 잘 참지 못 하기 때문이다. 

“어...... 그랬니? 좋았어?” 

“응.” 

아내가 웃는다. 

“선배 제법...... 하더라. 뜻밖이었어.” 

아내는 분명히 농으로, 분위기를 장난처럼 만들기 위해 하는 이야기였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의도와는 다르게 된다. 

“그랬어. 다행이네. 나도 좋았어.” 

진용이가 말한다.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랬구나.” 

“선영아, 저기...... 오늘 다른 일 없댔지? 우리 잠깐 어디서 한 잔만 하고 들어갈래?”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따라 시내는 차가 많이 막혔다. 

“저기 선배.” 

한참 만에 아내가 입을 연다. 

“나 있잖아, 선배가 옛날에 나한테 그런 감정 가졌다고 해서 좀 당황스러우면서 고맙고, 괜히 기분이 나쁘지 않고 그런데 말이야. 그래도 다른 식으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건 굉장히 옛날 일이고, 게다가 지금은...... 알잖아.” 

진용이는 응-하고 알아들었다는 건지 뭔지 모를 목소리만을 내었다. 아내는 말해놓고 나니 진용이가 ‘그런데 그렇다면서 엠티 때는 왜 그랬어?’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 또 할 수도 있어. 애들이 원한다면.” 

아내가 말한다. 

“그 날, 엠티 때 일 말이야.” 

진용이의 눈이 휘둥그래져서, 차마 아내 쪽을 돌아보지는 못 하고 백미러로 그녀 얼굴을 살핀다. 

“난 그런 것 상관 안 해. 애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나도 좋았으니까. 물론 애들이 또 그런 걸 원한다면 이야기지만.” 

아내가 말한다. 

“그러니까 선배도, 날...... 하고 싶으면 해도 돼. 나한테...... 해도 돼. 나 그런 것 싫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걸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 그냥 나는.” 

“우리 한 잔 하고 가자.” 

진용이가 말했다. 

“다른 생각 품지 않을 테니까. 응?”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 여긴 그대로네? 이 근처는 다 건물들 새로 올리고, 예전 가게들도 하나 남은 게 없던데.” 

진용이가 가게의 불을 켜자 아내는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하였다. 

“응. 이제 좀 뻘쭘하지. 옛날에는 근처가 다 이 분위기였는데 말야. 요즘은 장사도 안 되고 해서 그냥 심심파적으로 열어만 놔. 어차피 가게 세는 계산 안 해도 되니까.” 

진용이의 가게 ‘빵’이 있는 자그만 건물은 알고 보면 진용이의 소유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에서 나오는 세비가 있어서 자기 가게를 사실상 팽개쳐두고 하면서도 뒤늦게 대학원이나 다니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가 많이 지저분하지? 옛날 생각이 나서 데려왔어. 다른 데 가도 돼.” 

“아냐. 오랜만에 보니까 신선한걸. 그냥 여기 앉았다 가자. 술은 있어?” 

“저기 사실은......” 

진용이가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선영아, 나 소원이 하나 있다.” 

“뭔데? 뭐길래 그렇게 무게를 잡아.” 

아내는 진용이의 ‘소원’이 어떤 종류일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 때부터 대충은 짐작이 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가게 안에서 누구 귀에 들릴세라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이야기 내용에는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여기서? 아무리 그래도......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가게 아예 닫은 건 아니잖아. 혹시 손님이 오면 어떡해.” 

“가게 문 잠글게.” 

진용이의 얼굴이 너무 간절해서 아내는 무어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은 진용이가 아내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가게 문을 잠그러 일어섰다고 한다. 아내는 화급히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물건들 예전 그 자리에 다 있는 거야?” 

다 낡은 집기들에, 청소도 제대로 안 되었지만 어쨌든 가게 꼴은 갖추었다. 불을 다 켜고 음악까지 90년대에 흔히 돌리던 판으로 틀어 놓았다. 그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내는 심지어 학부시절 때의 머리모양을 했다. 예전처럼 긴 생머리는 아니라서 아주 깔끔한 포니테일이 나오지는 않지만, ‘에이 다 늙어서 이건 아닌 것 같다!’ 하는 아내의 말에 진용이는 ‘전혀 안 그래. 학부 때하고 똑같은걸!’ 했다. 나는 그게 아예 빈말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옛날로 돌아간 시늉을 했다. 그 동안의 세월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21세기가 아직 오지 않은 것처럼. 달라진 것이라고는 아내가 포니테일을 했어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었고, 그만큼 귀엽다기보다는 풍만해진 것 이외에, 

천연덕스럽게 생맥주를 따라 오는 자태에 앞치마와 작은 팬티 이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점뿐이다. 

“맥주 나왔습니다.” 

500cc 맥주잔과 마른안주를 챙겨준다. 서빙을 해주는 곳이 손님석이 아니라 카운터, 가게 주인의 자리라는 게 어색하다면 어색한 일이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녹색 앞치마는 나름대로 ‘빵’의 유니폼이었다. 그 사이로 그녀의 맨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곤두선 젖꼭지가 옷자락 사이로 아슬아슬 흔들린다. 모르긴 해도 그녀가 진짜 학부생이던 시절에는 이 때만큼 젖가슴이 푸짐하지 않았으리라. 

술과 안주에다가 냅킨과 포크까지 챙겨주는 동작이 의도적으로 느릿느릿하다. 그들은 그렇게 지나간 세기말을 되새김질한다. 

“선영 씨 여기 좀 앉아볼까? 같이 한 잔 해.” 

바를 사이에 둔 채 걸터앉는 아내의 맨가슴으로, 진용이는 견디지 못 하고 손을 뻗치고야 만다. 아내는 살짝 미소를 띈 채 그의 손길을 내버려둔다. 그녀의 젖꼭지를 더듬는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린다. 

실제로 예전에, 그들은 가게가 한가할 때면 이런 식으로 바를 사이에 두고 맥주 한 잔씩을 하곤 했었다. 물론 그때는 무례한 손아귀가 바를 넘어가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는 일이 없었지만. 

“좋아? 이러니까.” 

“응.” 

진용이의 목소리는, 아내의 말을 빌자면, 감동에 복받쳤는지 거진 울먹이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좋아. 딱 8년만 일찍 이랬어야 했는데.” 

“피! 웃기네. 선배가 그때 이랬으면 범죄였지.” 

아내의 젖가슴을 쥔 손아귀에 슬금슬금 힘이 들어간다. 

“선배, 살살 해. 좀 아프다.” 

“선영아.” 

진용이가 말한다. 

“이리 좀 들어올래? 바 이쪽으로.” 

아내가 바 안쪽으로 들어가자, 진용이는 그녀의 손을 자기 바지춤으로 끌어당긴다. 

“너 때문에 이렇게 돼 버렸어. 미치겠다.” 

진용이가 말한다. 이쯤 되면 아내 역시 이 게임으로 인해 상기될대로 상기된 상태다. 

“사실은 예전에도, 종종 이랬어. 네가 서빙을 하거나 바에서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고 있으면...... 이렇게 됐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그땐 내가 이 차림이 아니었는데도?” 

“그땐 내가 더 젊었잖아.” 

아내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서 어떻게 해 드릴까요? 아저씨.” 

“이리 와 봐.” 

진용이가 아내를 잡아끈다. 

“가게가 열려 있고, 테이블 쪽에는 손님들이 있어. 나는 밤새도록 음악을 틀어주고 안주를 만드느라 피곤하지. 그러면 우리 착한 선영이가 살짝 이 안으로 와서, 나를 달래주는 거야.” 

“선배를, 아니면 이 물건을?” 

“여기 아래에 앉아줄래?” 

아내는 순순히 응한다. 바 아래로, 진용이가 선 자리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허리띠를 푼다. 

“8년 전에도 이런 상상을 했어? 점잖은 아저씨인줄 알았는데 완전 음흉했었네.” 

진용이는 무어라 대꾸하려 했지만 그의 것을 쥐는 아내의 손길에 그만 눈을 감고 하려던 말을 삼켜버린다. 

그의 성기가 바지에서 해방되고, 아내는 장난스레 그것을 쥔 채 흔든다. 

“선배 수술 안 했네?” 

“응...... 나 군대에 안 갔잖니.” 

진용이는 숨을 몰아쉬고, 아내는 찔끔찔끔 눈물 흘려대는 그 물건의 벗겨진 껍데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선영아...... 빨아 줘.” 

아내는 웃으며 진용이의 성기 끝에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 물건이 외눈을 찔끔대며 맑은 눈물을 흘린다. 

“선영아.” 

“선배 것, 참 못생겼네.” 

아내가 놀리듯 말하지만, 본심은 아니라는 듯 그 못생긴 물건에 쪽, 하고 입을 맞춰준다. 

그런 짓들을 하느라고 그들은 입구 쪽 인기척을 느끼지 못 했다. 하기야 느꼈다고 하더라도, 문을 덜컹대거나 하는 대신 주저 없이 열쇠를 꽂고 돌리는 데에 대응할 길은 딱히 없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진용이가 놀라 몸을 굳히고, 아내는 겁결에 몸을 일으키려다가 바에 머리를 찧는다. 그녀가 쪼그려앉은 바 아래는 입구나 테이블들 쪽에서 보이지 않는 위치이지만, 조금 전 그녀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구석 테이블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옷가지들 맨 위로 그녀의 브레지어가 민망하게 올라타 앉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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