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결에 10년 만에 만난 그녀 3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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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결에 10년 만에 만난 그녀 3 마지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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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결에 10년 만에 만난 그녀 3 마지막편


처음 그녀를 보았던 날의 그 가슴 떨림이었다. 나도 모르게 지그시 눈이 감겼고 입꼬리가 올라가기까지 했다.


어떨결에 10년 만에 만난 그녀 3 마지막편

"하!"

붉으락푸르락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추억에 젖어드는 내가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

"재밌니?"

"아니, 그냥 좀 웃겨서."

"뭐가 웃긴데?"

"그냥."

"나도 웃겨. 내가 지금 여기에 와서 너한테 별것도 아닌 일로 따지고 드는 게."

"아니, 그런 거 아니고."

"그럼 뭐가?"

"하..."

나는 대답은 하지 않고 한숨 섞인 웃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시선을 카페 여기저기로 돌리며 자기의 양쪽 뺨을 손등으로 매만졌다. 그녀도 생각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화와 슬픔이 가시기 시작했다. 장난기 섞인 눈빛으로 나를 흘겼다.

"너도 생각났니?"

"그래!"

그녀도 살짝 웃었다.

"진짜 화를 못 내겠다 너한테는."

"나도 그렇네."

"진짜 얄밉다 너..."

"그래?"

'그래!'

서로 멋쩍게 웃었다.

"아직도 담배 피우니?"

'응."

"나가자."

그녀와 나는 카페를 나왔다.

"차 가까이에 있어?"

"응 저기."

그녀는 자동차 리모컨을 꺼내어 눌렀다. 길 건너 견인지역에 세워져 있는 아우디의 라이트가 번쩍거렸다.

"차 좋네."

"네 덕이라니까."

콧방귀가 나왔다.

"좀 타자."

"타."

그녀의 차 조수석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아우디는 참 좋았다.

"재떨이 있니?"

"그냥 펴."

그녀가 내 쪽 창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담배 바뀌었네?"

"그건 이제 안 나와."

"그렇구나."

그녀도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10년 전과 같은 담배였다. 그리고 10년 전 내 지포 라이터였다.

"알았어. 하나만 묻자."

"말해."

"너랑 헤어지면 아프고 슬플 내 마음 보상해줄 수 있어?"

"아니."

"그래."

그녀의 질문은 '나중에라도 너의 생각이 바뀔 수는 없겠어? 그럼 다시 올 수 있어?'라는 의미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나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싫어. 나가고 싶다. 그런데 나가려고 일어서서 옷을 입는 시간. 엄청 어색하겠지? 이별 통보받고 옷 입고 나갈 생각 하니까 여자로서 너무 자존심 상한다."

"내가 나갈게."

"그래. 네가 나가."

그녀는 하얀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나는 조용조용 옷을 챙겨 입고 모텔 방을 정리했다. 그녀가 이불 밖으로 나왔을 때 나와 함께 있었던 흔적들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뭐해?"

"치우고 있어."

"옷 다 입었으면 빨리 가."

"치우고 갈게."

"그냥 빨리 가!"

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불로 싸매진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마저 정리했다. 불을 끄고 신발을 신을 때 이불이 부스럭댔다.

'나를 보고 있는 거구나.'

돌아볼까 싶었지만 그대로 문고리를 잡았다.

"인사는 하고가."

울고 있었다.

"갈게."

'잘 지내.' 라는 말은 필요 없었다. 당분간은 잘 지내지 못할 테니까. 나는 방을 나와 모텔 복도에 섰다. 소리 내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후회됐다.

"어머니 오세요! 지금부터 국내산 양념돼지갈비가 세 근 반에 만 원씩! 마감 떨이입니다, 마감 떨이! 선착순 열 분만 오세요. 국내산 암퇘지로 만든 맛 좋은 양념돼지갈비 떨이입니다."

밤 열한 시가 넘었다. 마트 전단상품으로 깔아놓은 돼지갈비가 생각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다.

"아 씨X. 재고 X나 남았는데 X 됐다."

"내일 더 많이 팔면 되죠."

"지랄한다 이씨. 그럼 새끼야 네가 다 팔아봐."

"헤헤. 제가 다 팔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요."

"이 새끼가. 야, 이거 다 팔고 가. 조금 있으면 마감인데 어딜 가?"

"잠깐만요."

팀장에게 까불거리며 경례를 붙이고 직원 휴게실로 도망쳤다. 담배를 피우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집에 가는 길이야."

"버스는 아니지? 음악 소리가 들리네?"

"응. 차 안이야."

"누구?"

"과 선배."

"그래. 도착하면 전화해.'

"알았어.'

매장으로 돌아와 뒷정리하고 12시가 되어서야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하는 노래와 함께 매장을 빠져나왔다. 한 시간이 넘도록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내가 받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 휴대폰을 열어보았지만, 부재중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에 들어갔어?"

"응 지금 막 들어왔어."

"차 타고 가는데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나 걸려?"

"응~ 그게 아니라 20분?? 정도밖에 안 걸렸는데 오빠랑 차에서 얘기하느라."

"오빠? 그 과 선배?"

"응."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 뭐?

"그냥 이것저것이요."

"친구들이랑 술 마신다고 하지 않았어?"

"애들이랑 먹었는데 그 앞에서 만났어."

과 오빠라는 자식이 그녀에게 작업을 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차 타고 집에 가니까 편하지?"

"응 편하더라. 버스보다 1/3밖에 안 걸리는 것 같아."

"그럼 맨날 태워다 달라 그래"

"됐네요."

"왜? 그 사람이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는 것 같던데."

"무슨 두세 번이야? 학교에서 맨날 봐."

"좋아? 맨날 보니까?"

"아 좋긴 뭐가 좋아. 그냥 농담하다가 웃은 거지."

요즘 들어 그 과 선배라는 자식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그녀가 미웠다. 심술이 더 커졌다.

"아닌 거 같은데?"

"너 지금 내가 그 오빠 차 탔다고 삐진 거야?"

"내가 왜 삐져?"

"근데 왜 자꾸 삐딱선 타?"

"누가?'

"누구긴 누구야 너지!"

"내가 언제?"

"엄마?"

"내가 왜 엄마야.'

"아빠? 여보?"

평소 같았으면 웃어줬을 그녀의 농담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나 지금 집에 들어갈 거야."

"자기야."

"왜.'

"오늘 우리 집에 엄마 아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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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속 잘해."

평소 같았으면 ‘오예'하고 달려갔겠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와요~. 씻고 기다릴게요."

그녀가 애교를 부렸다.

"오늘 자전거 없어."

"어? 자전거 어쨌어?"

자전거는 전날 밤 퇴근길에 보도 블록 공사장을 지나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구덩이에 처박혀 나와 함께 앞으로 꼬꾸라지고는 세 바퀴를 구른 뒤 고철이 되었다. 그녀가 걱정할 것 같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버렸어."

"왜?"

"사고 났어."

"어? 왜? 어디서?"

"아 있어 그런 게.'

한번도 이런 식의 대답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짜증을 부렸다.

"근데 왜 말 안 했어?"

내 짜증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뭐하러 그런 걸 얘기해. 아무튼 나 집으로 가."

"그럼 택시 타고 와."

"택시비 없어."

"음… 그럼 택시비 빌려서 와. 응?'

짜증이 밀려왔다.

"야!"

처음으로 그녀에게 ‘야’ 소리를 했다. ‘아차’ 싶었지만, 화가 난 내 감정이 우선이었다.

"네?"

그녀는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듯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됐어. 집에 갈 거야."

"그럼 내가 택시비 줄게 그냥 타고 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네가 날 키우냐? 내가 거지야?"

불같이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오!

혼자 씩씩거리다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화는 내가 내놓고 그 탓을 과 선배라는 놈의 탓으로 돌렸다. 한참 동안 혼잣말로 욕을 했다. 그리고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열등감이 내 머리를 채웠다. 버스를 타고 다닐 돈도 없는 놈보다야 차 있는 놈이 낫겠지. 여자친구에게 택시비 준다는 소리를 듣는 나라는 새끼. 참 한심하다. 그 새끼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겼겠지? 하기야 나 같은 놈 만나다 잘생기고 돈 많은 놈이 좋다고 치근덕거리면 마다할 이유야 없다는 생각들 때문에 밤새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이대로 가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딸깍

그녀가 있는 방안에서 지퍼 라이터 여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아… 라이터를 안 갖고 왔네…’

그리고 부싯돌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터 소리가 밖으로 들릴 정도면 내 발걸음 소리도 분명 방안에 들릴 거라 생각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복도 끝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그 라이터 오랜만이다."

그녀는 라이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뒤집고 만지며 말했다.

"돌려줄까?"

"아니. 괜찮아."

"너는?"

"나는 뭐?"

"너는 나한테 뭐 돌려주고 싶은 거 없어?'

10년 만에 만난 그녀가 나에게 돌려받고 싶어하는 그 무엇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희뿌연 담배 연기를 창밖으로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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