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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주인이라는 사나이가 방으로 들어서자 중앙을 비워두고 양옆으로 늘어선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사나이를 반긴다. 

주인은 흠칫 놀라움을 표시하더니 이내 아무른 표정 없이 비워둔 상석의 자리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고 늘어선 남자들을 향해 조용하게 말한다. 

[앉으시오.] 

[예,] 

늘어선 남자들이 자리에 앉자 다시 주인이 입을 연다. 

[이렇게 환영해주니 기분은 좋습니다. 하하하............] 

[별말씀을 하십니다.] 

흑 범이 모든 남자들을 대신하여 송구한 듯 얼굴에 미소를 그린다. 

다른 사람 역시 흑 범과 같이 사나이가 즐거워하자 만족한 웃음을 짓는다. 

[자...이왕 오셨으니 차라도 드시고......... 

그리고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주저 없이 하시오.] 

주인은 모두에게 차를 권하고 자기도 찻잔 뚜껑을 열고 그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저...............] 

흑 범이 멈칫멈칫하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말을 뱉지 못한다. 

[주저 없이 말하시라니까.............] 

주인은 흑 범이 어쩔 줄 몰라 하자 찻잔을 입에서 떼며 그에게 말할 용기를 준다. 

[주인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몇 마디 올릴까합니다. 

주인님이 여기 오시기전에 우리 모두는 결정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인님을 큰형님으로 받들기로........... 

저희들의 뜻을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흑 범이 이야기를 마치며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주인님, 저희들의 뜻을 받아 주십시오.] 

흑 범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그곳에 모인 모든 남자들의 허리도 숙여지고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들의 뜻을 받아달라고 간청한다. 

주인은 순간적으로 당혹했다. 

아무리 조직세계이고 힘을 우선하는 집단이지만 함부로 머리를 숙이며 자기들의 기반을 송두리 체 바치는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는 일이다. 

물론 흑 범과 몇몇 조직의 보스들은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있으나 서울의 거의 대다수 조직들의 보스가 자기위에 상전으로 모시겠다는 것은 자기를 인정했다는 것일 것이다. 

자기의 어떤 면이........ 산에서 익힌 싸움실력이......물론 자기가 익힌 기술이 싸움기술로 변모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고 처음엔 남이 건드리는 것이 싫었고 무엇보다 남에게 진다는 자체가 싫어 적을 잡으려면 대가리부터 잡아야 편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해서 찾아다니며 싸움을 걸었고 결과는 모두 자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이었다. 

일가친지 하나 없는 외톨이가 편하게 먹고 자는 일이 그런 싸움을 이기므로 해서 호의호식했으므로 더욱 신명나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지 않았든가. 

그런 일 말고는 이 사람들과 아무른 상하관계를 맺으려고 한일도 아니었고 그저 편하게 

먹고 마시며 쾌락을 누리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 모두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들의 형님이 

되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은 빙그레 웃는다. 

[하하하..........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난 당신들과 같은 깡패는 되기 싫소. 

그냥 편하게 살고 싶어 당신들과 드잡이 질 한 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구려......] 

주인은 그 말을 하고는 차를 다시 한 번 마신다. 

그리고 찻잔을 상에 내려놓고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난 이번에 그 감옥이란 곳에 가서 많은걸 느꼈소. 

사람은 선한 것만 제일이 아니고 필요악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 형들이 무엇 때문에 날 형님으로 모시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난 당신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드는 놈이오. 

해서 이번기회에 확실히 일러두겠소. 

어찌되었건 난 한발을 더러운 곳에 디뎠으니 당신들과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난 당신들의 세력다툼에 조금치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내가 당신들과 같이 논다고 당신들 세계에 끌어들이려 마시오. 

인연이 당신들과 엮였으니 나를 필요로 하고 내 마음이 원하면 난 선악을 따지지 않고 

당신들을 도와줄 것이오. 

그렇다고 날 건드리라는 말은 아니오. 

다만 날 건드리지만 않는다면..........가끔 이렇게 만나 술이나 한잔할 수 있을 것이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내 일은 철저하게 하는 놈이오. 

날 건드린 놈은 밟아주지 않고는 절대 살지 않는다 이 말이오. 

그러니 날 내 맘대로 살게 그저 옆에서 조금만..... 

지금 내형편이 그러니 조금만 도와주었으면 하오. 

알겠소. 모두들.......] 

주인은 자기의 신념을 확고히 밝힌다. 

그건 앞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는 있지만 나를 그런 세계에 끌어들이거나 그런 곳에 

있는 놈으로 살기 싫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자는 분명히 응징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지금 주인의 속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본인만이 알뿐이다. 

[주인님........그렇지만...........] 

흑 은 주인이 자기들과 절연하지 않겠다는 말에 안도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군림할 힘과 그 실력을 보여주었고 그걸 본 모든 이가 진심으로 굴복하고 따르기로 한마음을 모았는데 너무나 생각 밖의 말에 당황한다. 

[하하하. 말은 끝났소. 

침 말 나온 김에 여러분께 부탁 몇 가지합시다. 

당신네들 나에게 돈 좀 줄 수 있소.] 

주인은 흑 범의 말을 끊는다. 

자기 뜻은 밝혔고 두 번 다시 입에 거론하기 싫다며 잘라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앞에 앉은 사람들을 보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간섭도 안하겠다며 부탁은 왜 하는 것일까........ 

그건 암중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겠다는 주인의 의도인지............ 

[예, 얼마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원하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사실은 나도 어디 편안히 거처할 곳이 있어야겠는데......... 

내 형편이 형편인지라....... 

허허....... 이것 참.... 이거 영 체면이 안서니...........] 

주인은 민망했다. 

돈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사실 반 강제나 다름없으니........ 

자기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질 않는가... 

이제껏 흑 범의 신세를 지어왔건만 지금은 살 집을 마련하고자 놈들에게 사정하는 언사를 내뱉어야 했으니. 사나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그런 뜻이었습니까? 

주인님 염려 마십시오, 

전 진즉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제가 좋은 곳을 물색해 두었고 주인님의 마음에 꼭 들도록 설계를 해서 흡족하게 지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달리 하실 말씀이라도.........] 

흑 범이 신명나게 대답한다. 

아마 자기가 이제껏 주인을 모셔왔기에 누구보다 기득권이 큰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해서 여기모인 사람들을 대표해서 자랑스럽게 발언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흑 범이 나서는 것을 바라고 있었고........ 

흑 범은 그런 주인의 마음을 벌써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어쩌면 남모르게 그러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또 하나, 지금까지 난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고 살았소. 

똑똑하고 머리 좋은 사람이 필요한데...... 

난 그 사람에게 세상살이의 많은 것을 배울까 해서 말이오. 

그런 사람 있겠소.] 

주인이 자기 앞에 늘어선 사람들을 본다. 

자기를 가르칠 선생을 구한다는 말이다. 

물론 말은 선생이지만 충견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주인의 말을 듣고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선뜻 떠오르는 인물도 없었고 또한 주인을 곁에 모시는 놈이라면 자기들과 거의 배분이 비슷해지는데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역효과가 어찌 돌아올지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후후.......없는 모양이군........허긴 살다보면 찾아지겠지.........] 

주인이 쓴 웃음을 짓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앞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눈치 챌 것도 같았다. 

이때 

[저...... 주인님을 제가 모시면 안 될까요.] 

가냘픈 소리가 들리자 모두는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다. 

말을 한 사람은 여인이었고 조금 전까지 주인을 모시고 온 석란이었다. 

말석에 앉은 석란이 그 말을 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맞아, 그래, 너라면 금상첨화야........ 

하하하. 곁에 두고도 몰랐다니.................. 

주인님, 저년입니다. 

저년이라면 아마 주인님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흑 범이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주인도 석란을 쳐다본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석란에게 묻는다. 

[누님, 그럼 지금까지 삶하고는 딴 삶을 살아야하는데 그래도 좋아.......] 

[주인님을 모실 수 있다면..............] 

석란이 모기소리 같은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그 목소리에서 주인을 사모하는 애정 충만한 떨림을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좋아..........모두들 들어요. 

지금부터 란 누님을 나의 사자로 하겠어. 

란 누님이 하는 말이 내말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주길 바라겠소.] 

[알겠습니다. 주인님........하하하........] 

모두는 큰소리로 대답한다. 

모두들 하나같이 불만이 없다는 투다. 

[그럼 오늘은 이정도로 하고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사자를 통해 연락하지. 

또한 나에게 연락할일 있으면 사자를 통해서 하도록 하고......... 

자........난 먼저 일어나 쉬어야겠어. 형들도 이젠 모두 돌아가시오.] 

주인은 말을 마치고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향해 걸어간다. 

조금은 냉정하고 건방진 행동이다. 

[그럼 주인님 편히 쉬십시오. 

저희들은 돌아가겠습니다.] 

.................................................................... 

으슥한 밤. 

주인은 창가에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믐이라서인지 한 여름이라도 어두움은 피할 수 없는가보다. 

[누님, 잘 보살펴줘. 

난 세상에 나오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내일에 방해하는 놈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맹세한 놈이야. 

이왕 누님이 날 도와주기로 했으면 누님이 힘들어도 내 뜻에 따라줘.... 

누구보다 누님이 날 잘 알고 있을 테니.................] 

인 이는 뒤에 다소곳이 서있는 석란에게 말한다. 

어딘지 모르게 감히 범접키 어려운 냉기가 인 이의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럴게요. 

난 각오했어요. 

다만 당신이 날 버리지만 말았으면...................] 

석란의 말은 힘이 없었다. 

이미 약자가 되어있었고 그를 떠나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단지 이 남자가 자기를 기피하거나 멀리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니 자기를 버릴지언정 자기는 이 남자를 배신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끼고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마워.......... 

난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설 렵 하고 싶어. 

내 꿈이 오직 그거야. 

그 영감탱이 말이 하나도 거짓은 아닌 것 같아. 

정말 세상에 나와 보니 그것 말고는 나에게 관심 끌 일이 없어...... 

누님이 도와준다면 난 엄청 편할 거야..........후후후............] 

인 이는 말에 힘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석란에게 어려운 일을 부담하게 한다는 미안함에 조금은 씁쓸했다. 

앞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모든 것이 석란이 떠 맞고 책임져야 할 일이었기에 미안했고 그것이 자기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하는 석란에게 주는 가중된 압박이 어마하기에 죄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석란의 고통보다는 자기의 욕구가 더욱 컸다. 

그러하기에 씁쓸한 웃음으로 그 부담을 지우려 한 것이다, 

[그만.............. 

당신이 날 기억만 한다면 만족해요. 

어차피 당신은 나 같은 여자 몇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남자이니.............] 

석란도 쓴 미소를 짓는다. 

이 남자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만이 이남자의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후후후................] 

인은 여전히 서글픈 미소를 입가에 담고 있다. 

그리고 다 마신 찻잔을 석란에게 건네준다. 

[누님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야 돼.... 

난 누님에게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짓게 해야 하니.......... 

그래줄 수 있지 누님........] 

인은 석란의 고개를 오른손으로 올려 그 얼굴의 눈을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석란은 인의 미소를 본다. 

한없이 말려들어갈 것 같은 미소에 혼이 나갈 지경이다. 

석란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나의 모든 것은 이미 당신이 주인인걸요.] 

[고마워..............] 

인은 살며시 얼굴을 내려 석란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내린다. 

그리고 길고 긴 키스의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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