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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철야작업으로 부족했던 잠을 주말을 이용해 보충하려고, 평소 보단 일찍 사무실을 나서던 형규는, 핸드폰을 받는다는게 짜증스러 웠다. 벨이 서 너번 울리자, 플립을 올렸다가 내려 전화를 꺼버렸다. 벨 소리를 무음으로 전환할려고 버튼을 조작할때, 다시 램프에 불이 들어 오면서 재차 통화상태 가 되었다. 두번씩 그런다는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도 아닌것 같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이고...우리 영감님!!! 안녕하신가?" "기영이구나. 잘 지냈어? 별일 없지?" "나야 우리 영감님 덕분에 무사태평이지." 기영의 넉살은 여전했다. 불알 친구로 세상을 참 힘들게 사는 놈이다. 중학 교때부터 경찰서를 드나들기 시작하더니,지금은 훈장도 제법 달았 다. 항상 형규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했고,그런 형규의 기대에 부응 해, 잊혀질만 하 면 사건을 저질렀다. 연락이 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전화가 온 것이다. 오랫만에 듣는 목소리가 반갑기도 했지만,무소식이 희소식인 기영에 게서 연락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형규는 걱정이 앞섰다.



 



"형규야, 나 사무실하나 오픈했다. 오늘 들려줄거지?" "그래? 축하한다. 당연히 가야지." "고맙다. 그럼 일단 집으로 먼저 와라." 피곤한 몸이었지만, 서른이 넘어서 자기일을 갖게된 기영을, 형규는 누구보 다도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다. 화분을 하나 선물하고 싶었는데,주인의 요란 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나무잎이 별로 싱싱해 보이지 않아서 화원에서 그냥 나와버렸다. 일단 기영과 만나 이야기를 해보고 필요한 것을 선물하기로했다 . 벨을 누르자 마자 반가운 얼굴로 기영이 뛰쳐 나왔다. "어서 와라. 밖이 많이 덥지?" "아냐. 견딜만한데 뭐.." 아파트로 들어서자, 안개가 깔린 것처럼 뿌연 담배연기가 거실 가득했다. 눈 이 맵고 재채기가 나올려고 했다. "야..... 창문좀 열어라." "예. 형님" 기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떡대 한녀석이 잽싸게 창문을 열었다. 형규는 기영 주위의 떡대들에게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제는 그냥 내버려 뒀다. 댓명이 횡을 이루 더니 모래시계류의 인사로 형규를 영접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런쪽 일일거라 는 생각이들자,기쁜 마음으로 쏟아지는 잠을 참고 달려온 자신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 한마디 없이 음료수만 마시고 있자,기영은 동생들에게 어렸 을적 형규와 있었던 일들을 늘어 놓으며,형규의 눈치를 살폈다. 기영이 동생들에게 한 이 야기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기영은 형규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고등학교때는 형규와 학교가 달랐음에도, 수시로 형규의 학교에 들렸고, 기 영과의 관계를 안 애들은 그누구도 형규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기영이 고 등학교를 짤리고 소년원에 가게 된것도, 어찌보면 형규때문이었다. 형규가 건드린 여학생때문에 큰 싸움이 생겼는데,기영이 아니었으면 형규는 지금 세 상에 없을지도 몰랐다. 가는 길이 달랐음에도 지금까지 그들의 만남이 지속 되는건, 형규가 진 빚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번엔 어떤 일이야? 사무실은 어디고.." 형규가 말문을 열자 떡대들은 약속이나 한듯,방으로 들어갔다. "그게...저..사실은..있잖아...." "응..뭔데...?" "음...저... 여기가 사무실이야." "그래? 무슨 일을 하기로 했는데..?" "저.....너도 알다시피 요즘 내가 좀 어렵잖아.주먹만 가지고 살 수 있는 세 상도 아니고...." "그걸 알았다니 다행이다. 그래서..여기서 시작하려는 일이 뭔데..?" "그게.... 음..별건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제공 해주는 ..." "너...설마?" "........." "임마, 그건 놀음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야. 너 미쳤어? 고작 그따위 것 한다 고 할려고 날 불렀어?"



 



형규는 뭔가 이야기할려고, 자신을 붙드는 기영을 뒤로하고, 아파트를 뛰쳐 나왔다. 무더운 날씨에 가슴속에서는 불길까지 치밀어, 형규는 얼굴을 울그 락 불그락거리며 씩씩댔다. 기영과의 만남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형규는 기 영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삶을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 다. 그러나, 만나보면 항상 그대로였다. 그게 안타까왔고,어떻게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화가났다. 소주를 두병 반이나 마시고 일요일 오후까지 잠만 자버렸다. 두어달이 흘렀 다. 아침 저녁으론 바람도 제법 선선하게 불었다. 문득 기영이 떠올랐다. 잘 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두달 동안, 도박죄로 서울에서 잡힌 사람들의 명단 에 기영이 없는걸보면, 큰 일은 없었을것도 같았다. 15년전 이맘때 북한산을 함께 오르던 추억이 떠 오르며, 기영이 보고 싶어졌다. 양재동 부근에서 차 가 정체되어, 과천에 도착하자 뉘엿뉘엿 해가 질무렵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기영이 반기는걸 보면, 망보는 녀석이 제 할 일은 철저 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살만하냐?" "다 그렇지...." "니 녀석 안잡혔나 명단 뒤척여봐도 없더라... 과천서가 그렇게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닌데.....



 



사업수완이 좋은가봐..?" "임마,오늘은 잔소리 그만하고..술이나 한잔 하자. 동호야,가게에 전화좀 넣 어라." "안에 손님들 있지?" "신경쓸 것 없어. 애들이 알아서 다 잘해." "그러지말고 저쪽 방에 들어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 "이쌔끼가...너...지금 사람 무시하냐? 너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목구멍에 때좀 벗겨야지. 똘똘이 목욕도 좀 시키고.. 내가 쥑이는 애로 하나 앉혀줄게 ." "그건 다음에 하고, 오늘은 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나 하고 싶어서.." "그래? 음..... 동호야, 김 사장한테 도다리 하나 보내라고해라. 귀한 손님 오셨다고 하고,씹히는게 아니다 싶으면, 내가 쫓아 간다고 그래." 출소날 형규가 먹여준 두부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끊임없이 이어졌던 젊은 날의 사건들을 이야기 하며, 오랫만에 형규는 맛있는 소주를 마셨 다. 취기 가 살짝 오르자, 형규는 기영의 영업 장소를 보고 싶었다. 그래봐야 도박판 이지만, 혹시 기영을 곤경에 빠트릴만한 사람이 없나 살펴봐야겠다는 노파심 에서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녹색 나사가 덮인 원탁 테이블이 있었고, 빙둘러 여섯명이 앉아 있었다. 방끝에는 긴소파를 두개 이어 놓아두었고, 두명이 앉아 있었다 .



 



한명은 기영의 동생으로 잔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있는 듯 했고, 나머지 한 명은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다. 문쪽에서 보이는 두명에게, 기영이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형규와 기영은 소파에 가서 앉았다. "땁" "뚜주" "스테이" "스테이 굿" "다이" "나도 다이" "레이스...." 그걸로만 먹고 사는 사람들인지,물 흐르듯 판이 전개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만원 다발과 수표가 테이블에 싸였다. 기천만원은 족히 되는것 같았다. 마지 막까지 남은 세사람이 패를 비교하더니, 황토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그 돈을 다 쓸어 갔다. 기영의 동생은 번개처럼 달려가 보조 의자에 앉더니 ,다음 새로운 판이 돌아가는 동안 능숙한 동작으로 돈 다발을 정리했다. 모자는 수표 한장을 건네 주었다. 그 판이 제법 큰 판이었던 모양이다. 형규 의 눈에 한 사람의 뒷 모습이 들어왔다.



 



여자였다. 허리 바로 위까지 굵게 웨이브진 머리가 늘어뜨려져 있었고, 탁자에 걸쳐진 팔뚝은, 형규가 부러뜨 릴 수 있어보일 만큼 얇았다. 엉덩이와 허리는, 아쉽게도 반팔 면티가 가리 고 있어서 파악이 힘들었다. 테이블 아래로 살짝 보이는 발가락 에는 까만 패티큐어가 칠해져있었다. 여자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형규는 관음의 야릇함을 즐겼다. 그러는 동안 서너판이 더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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