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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에서 사용하는 도면으로서, 흡사 의자가 폭파되어 하나하나의 부품이 중심으로부터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상세 도면 이었다. 그것은 조립공정에 쓰이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서 AS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도면과 첨부되어 있는 보고서에는 해당 도면상의 특정부품과 위치상의 상관관계, 그리고, 망실이라든가 잦은 파손에 대한 보고와 함께, 현장에서 보고 되어지는 디자인 결함을 지적하는 자료들이 망라 되어 있었다. 항상 좌석을 디자인 하다 보면 감초처럼 껴들어가는 조항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은 눈감고도 그려내야 하는 디자인 상의 기초사항 들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디자이너의 창조력을 감쇄 시키는 걸림돌 이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좌석 밑에 장착 되는 열선의 경우, 항시 사람의 하중이 내리 누르는 관계로 그것을 지탱해 줄만한 지지력을 갖춘 재질을 외장에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전제가 따라 붙는 것이 그 비근한 예였다. 그러다, 보니 빈번하고도 다른 좌석에 비해 장시간 사람이 앉아 있게 될 운전석은 다른 좌석에 비해 더 많은 옵션의 고려로 인해 디자인 컨셉은 초기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게다가 의자에 장시간 앉아 있게 될 운전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언제나 회사를 당황케 하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리콜 까지는 안 가더라도 판매 후, 돌아올 사용자들의 짜증 섞인 불평을 무마시켜 줄 수 있는 각별한 응대요령이 소비자 보호실로 전문이 되어 보내질 정도 였으니 말이다. 나는 그 도면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배운 것도 많지만 짜증나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고려해야 될 많은 부분들로 인해서 디자이너의 의도는 사라지기 일 쑤 였고, 불평이 접수된 사항에 대해서는 다음 차종이 출시 되기 전에는 반드시 수정을 필요로하는 과정으로 인해 이게 단가를 위한 디자인인지, 불평을 듣지않기 위한 디자인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디자이너는 동네북의 처지였으니까… 



‘신동혁씨, 나랑 같이 어디 좀 갑시다.’ 



나는 처음으로 윤 과장님과 외출을 할 수가 있었다. 신입사원으로서 회사는 직장이기도 했지만 하루종일 눈칫밥을 먹으면서 지내야 하는 창살 없는 감옥이기도 했기에 이런 외출은 정말이지 날아갈 듯한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윤 과장님은 어느 일식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이게 왠 떡이냐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다다미 방에는 어떤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와서 기다리고 계셨네. 어서 음식 시키죠.’ 



윤 과장님 과는 매우 잘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제 밑에 있는 신입 디자이너 입니다. 신동혁씨 라고, 인사하지, 이분은 우리 의자를 납품하시는 00산업의 최준성 사장님…’ 



윤 과장님의 소개로 나는 뻔쩍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대단하신 분인 모양이네. 윤 과장님 밑에 계신 걸 보니….’ 



음식이 들어오고 세 사람간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최 사장님이 먼저 말문을 여셨다. 



‘그러니까 벌써 2년이 다 되가네, 그렇지요?’ 



‘그렇게 되나요? 세월이 빠르긴 합니다. 저도 어느새 아랫 사람을 들이고…’ 



‘받으셔도 벌써 받으셔야 했는데, 일이 바빴던 거죠. 그렇게 매달리시는 일만 아니었어도 조수 받아서 편히 일하실 수도 있었는데…. 참 부탁 하신 거 이제야 도착했습니다. 장장 7개월이 걸렸습니다. 저희도 몰랐던 것을 알게 해 주셔서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이거 약소 하지만, 약주라도….’ 



하면서 그 사장님께서 서류가 들어간 누런 봉투와 함께 흰 봉투를 같이 내밀었다. 



‘아닙니다. 사실 자재과와 관행적으로 이런 봉투가 오가기도 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희 부서는 구지 이런 것을 받아야 될 필요는 없지요. 사장님의 애써주신 마음만 받겠습니다. 접대도 사양하고 싶구요. 다만, 오늘 점심, 제가 보답하는 의미에서 사겠습니다. 허허허’ 



평소에 얼굴에 웃음이 없던 윤 과장님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으이그, 저 봉투 받지, 회식이나 거하게 할 수 있을 거인데…그 날, 점심을 마치고, 윤 과장님은 회사로 돌아와 팀장님과 회의실에 들어가 긴 시간, 회의를 하고 나섰다. 회의실 안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쿵쾅 거리는 소리까지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어서 디자인 실은 그 분위기에 눌려 쥐 죽은 듯이 고요하기만 했다. 이어서 문이 쾅 열리며, 윤 과장님이 튀어 나왔다. 



‘선배도 다를 거 하나 없어요. 그치 들과 다를 게 뭐 있어요?’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 나더러 어쩌라구? 제발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깐…’ 



윤 과장님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옷을 집어 들더니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 뒤를 쫓으려던 팀장님은 기어이 윤 과장님을 놓치고 말았다. 그 날 내내, 팀장님은 말이 없으셨다. 저녁 때가 되어 야근을 하고 있던 나에게 팀장님께서 오셨다. 



‘오늘 내가 술 한잔 살까?’ 



저녁을 먹을 때도, 단란주점에 들어가셔서도 팀장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여자들도 안 부르시고 술만 들이키셨고, 나도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았다. 



‘아까 윤 과장님과 다투시는 것 같던데…’ 



‘응, 그거? 항상 그렇지 뭐.’ 



‘무슨 일인데요? 제가 혹시 알면 안되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윤 과장이 너무 속이 급해서 그렇지. 학교 때도 그렇더니만’ 



‘윤 과장님이랑은 선후배 사이세요?’ 



‘응.’ 



‘그랬구나.’ 



‘혜원이가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팀장님은 술을 드시다 말고 고개를 떨구셨다. 



‘혜원이를 윤 과장에게 소개한 게 나였어. 회사에서 똑똑하다고 소문이 자자했고, 엘리트 에다가 성격도 좋아서 내가 동생의 신랑감으로 점 찍어 두고 있었지. 혜원이는 내 입사 동기고 그런데 그 차가 문제 였어.’ 



‘차라뇨?’ 



‘자네도 알다시피 신차가 나오면 직원들에게 할당이 나오 잖아? 마침 결혼 한 직후였고, 차도 필요한 김에 덜컥 배당 받은 차중에서 한대를 사서 혜원이 에게 선물한 거지.’



‘그런데요?’ 



‘얌전 하기만 했던 혜원이가 차를 몰기 시작하면서 이상해 지더 라는 거야.’ 



나는 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술을 도저히 들이킬 수 가 없었다. 너무나 진기한 이야기 였기에… 



‘자기야? 나 어때?’ 



‘야, 이거 너무 야하지 않나?’ 



윤 과장님은 평소와 다르게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신을 마중 나온 아내, 혜원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자동차에서 내리는데, 보니 팬티가 거의 비쳐 보이는 하늘 하늘한 나시 원피스 였는데, 하도 짧아서 차에서 내리는데 온 허벅지가 드러나고, 눈부신 하얀 다리가 밖으로 보여서 자기가 몸으로 가려야 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차에 올라 옆을 보니 운전을 하면서도 무엇이 즐거운지 싱글벙글 들떠 있는 것이 꼭 소풍 가는 어린이 모습이었다. 



‘나 오늘 고등학교 동창회에 갔었거든?’ 



‘근데?’ 



‘다들 차가 멋있다고 야단들 이었다니깐? 당신 앞으로 할당된 차가 세대라고 했지? 한대는 우리가 샀으니, 두 대만 더 팔면 되는 거지? 문제 없다구! 내가 내조의 공을 여실히 보여줄게.’ 



‘이렇게 황송할 데가 다 있나? 마마, 어련 하시겠습니까요?’ 



‘농담이 아니라니깐? 벌써 아이들 한테 카탈로그 나누어 주고 왔어, 이래도?’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날, 그녀는 팬티도 거의 실낱 같은 T팬티만을 입고 차를 탔고,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윤 과장님은 차 문을 잠그다가 운전석의 의자에 묻은 물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혜원씨를 먼저 보내고 차문을 열고, 그 물기를 손으로 만져 보니 미끈 하는 것이 느낌이 이상해서 맡아 보니 조금 이상한 쉰 냄새가 나는 것이 아무래도 씹물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윤 과장님을 마중 나올 때나 외출할 때는 언제나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조르는 것은 둘 째 치고 언제나 맨 살로 차를 타고 운전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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