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스포츠토토 배트맨 먹튀검증 먹튀 검증소 슈어맨 스포츠분석 야구 축구 배구 농구 라이브스코어 네임드 토토정보 사다리 스포츠 뉴스 악성유저 안전공원 무료픽 선발 결장 엔트리 돈버는법 안전사이트 토토사이트추천 카지노 성인pc 검증소 먹튀검증
어들들의 性이야기 야설 게시판ㅣ먹튀사이트 없는 세상 먹튀 검증소
안전사이트 열람 닫기

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나루토토 달천도사 0 606 0 0

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또 하나의 육이오 상흔
나를 슬프게 하는 노래가 하나 있다.

<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
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
흙이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이 노래가 지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사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마누라 그리고 나와 한 집에 사는 호건이와 호건이 엄마는 매년 현충일만 되며 국립묘지에 참배를 하러 간다
난 내 친구였던 강 상호 일병을 애도하기 위하여 가고 이미 세상을 하직한 내 아내는 하룻밤 풋사랑이지만 정을 나누었던 상호 오빠를 매년 애도하다가 5년 전에 그를 따라 갔고 상호를 아버지로 알고 있는호건이와 오헉이 내외는(사실은 군대 가기 전에 서로 마누라를 바꾸어 이틀을 잤는데 호건이 엄마가 내 아이를 임신을 하여 호건이를 낳고 상호 호적에 입적을 시켰음) 아버지와 시아버지에 인사를 하러가고 호건이 엄마는 자신에게 면사포를 씌워준 남편 상호의 영전에 애도를 표하기 위하여 찾아가며 아늬 아등 딸 내외는 사연도 모르고 시아버지인 내가 가자고 하니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는 것이다.

사실 육이오가 나기 전부터 우리 부락은 딱 두 가구뿐이었다.
요즘이야 전기가 올라오고 펌프가 있으며 내가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바꾼 덕에 물을 펑펑 쓰지만 친구 상호하고 뜻을 맞추어 올라오기 전만하여도 집도 절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문론 나와 상호가 15살이 먹기 전까지 살던 부락은 컷고 사람도 많았으며 나와 상호는 형제가 많았다.
그랬기에 나와 상호는 도토리 밥보다 못 한 그런 존재감이라고는 젼혀 업승 사람이었다.
우리 형제는 13남매 중에 6번째였고 상호는 10남매 중에 세 째였다.
상호와 난 나이도 같았지만 의견도 투합이 되었다.
우리 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님 밑에서 농사일을 배웠다.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말이다.
일에 관한한은 나나 상호나 부모님이나 형 누나들에게 지적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지금에야 밝힐 수 있는 이야기지만 나와 상호 둘만의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우리가 15살이 되는 해의 설이 지나면 그 동안 여분으로 몰래 장만을 하여두었던 농기구들과 곡식들을 가지고 깊은 산으로 올라가기로 말이다.

상호와 난 시간만 나면 우리가 갈서 산길도 없는 산에 갔고 가면서도 빈손으로 가는 것아 아니라 농사를 짓는데 쓰일만한 것 내지는 움막집이라 자을 때 쓰일 나무판자 하나라고 가지고 갔고 15살이 되어서 올라와 불을 질러 화전은 만들기로 한 것의 나무 사이에 있던 돌부터 멀리 옮기고 열다섯이 되는 해에 정식으로 산으로 올라가 오두막 하나만 짓고서 산을 개간하기로 약속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갈 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상호와 저 둘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지어 고구마나 옥수수 등의 우리가 심어서 수확을 하여 한 가마니 이상 집에다가 도움을 줄 수 있을 때까지 절대 집에 왕래를 하지 않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해방이 되던 해에 우리들은 가출을 단행하였습니다.
첫 해에 고생을 정말이지 말로는 어떻게 표현을 하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나무를 해가 팔아서 산 보리쌀이 우리들의 식량이었고 그도 하루에 두 끼 이상을 먹은 젓이 없었습니다.
아무 나물이나 끓여먹다가 죽다가도 살아았고 소나무 속껍질을 뜯어다가 옥수수 가루와 함께 풋대 죽을 끓여먹기가 다반사였다.
보리쌀로 죽이라도 해 먹는 날은 한 달이면 한 번 정도 있었을까 할 정도로 우리는 절약을 하면서도 아주 부지런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두 째 중후반부터(감자가 나오면서) 그리고 이듬해에는 자급자족 수준의 농사가 되었습니다.
삼 년 째 가을 우리는 약속대로 당당하게 지게에 고구마 한 가마니 옥수수 한 가마니 반을 가지고 집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이나 상호 부모님은 우리가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다고 아예 없는 자식 취급하였다는데 우리기 빈약하지만 금의환향하여 집으로 가자 가족들을 우리를 얼싸안고 잔치까지 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상호와 저는 아빠들만 데리고 우리가 개간한 땅을 보여주자 우리더러 형제처럼 의지하며 살라고 하시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요즘은 비포장이지만 도로라도 있지만 당시에 우리가 살던 여기서 우리 부모님이 사는 곳 까지 가려면 하루 반이 꼬빡 걸리는 그런 오지도 그런 오지가 없다고 할 정도로 오지였습니다.
산길도 우리가 일일이 나무를 베고 풀도 베어서 만들어 진 길이었지 길도 하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농사가 안정권에 들어가자 장가 갈일이 생각났습니다.
그게 아마 19살 되;던 해였지 싶습니다.
색시 구하는 것도 급하지만 그 보다는 움막집이라도 집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를 장으로 가져가서 팔았고 그리고 못과 대패 톱 못 등을 샀습니다.
철물점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깊숙한 산에서 화전을 일구고 사는데 장가들 아니가 되어가기에 집을 하나 더 짓기 위해 연장들과 필요한 것을 산다고 하였더니 각시 먹여 살릴 정도는 되느냐고 크게 관심을 보이시기에 우리만 먹는 것이 아나라 부모님에게도 작지만 일부 가져다준다고 하자 다음 장날 필히 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장날 그 철물점으로 갔을 때는 거지 행색을 한 두 사람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다짜고짜 자기들을 우리 화전 밭으로 데리고 가자며 앞장을 섰습니다.
길도 없는 길을 가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간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로 동갑내기 딸을 두고 있는데 입에 풀칠만 해 줄수 있는 사람이라면 첩자라라도 마다하지 않을 판국에 철물점주인으로부터 우리들 이야기를 듣고는 아침부터 철물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우리가 일군 화전을 보자마자 덩치가 상호에 비하여 조금 큰 나를 보고 한 사란이 박 서방 하며 내 손을 잡자 다른 사람이 상호 손을 덥석 잡더니 강 서방 하고 불렀고 그 두 사람은 거기서 남아 우리가 짓고 있던 집이 완성이 되는 날까지 함께 일을 하더니 내려갔고 이틀 후 그 두 남자들이 여자를 각기 둘 데리고 오더니 나이 많은 한 여자를 장모라고 소개하고 어린 처자를 내 아내라고 하며 막무가내로 맡기고는 가버렸고 상호 역시 새0drkr지도 않은 여자를 각시로 맞이하였다. 

상호 마누라와 우리 마누라는 우리처럼 고추친구였다.
그러니 서로의 비밀이 없었다.
상화와 나처럼 말이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 두 여자들은 상대 보지 털이 몇 개인지도 서로 알 정도였다.
그러니 부부간에 있었던 일도 모조리 공유하고 있었다.
호미가 문제가 생겨 장에 다녀온 상호 처다 전쟁이야기를 하였다.
상호 처의 말에 따르면 남자란 남자는 보이기만 하면 징용으로 끌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상호가 가야 한다면 갔다가 오자는 것이었다.

우리의 고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둘 다 군에 가면 농사는 누가 짓느냐.
마누라들이 짓겠다고 나섰다.

말이 전쟁인데 죽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하느냐.
해답이 없었다.

또 하나만 죽고 하나만 살아서 오면 어떻게 하느냐.
역시 해답이 없었다.

두 마누라 모두가 아이를 배지 않았는데 후사는 어떻게 하느냐.
역시 답이 없었다.

이틀을 그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는데 상호가 넌지시 자가 마누라가 흘린 말이라며 내어놓은 안이 있었다.


둘 다 죽을 경우 마누라들이 농사를 짓고 누가 하나 죽고 하나만 살아오면 살아온 남자를 두 여자가 서방으로 모시고 살고 누가 살아오던 상호가 낳은 아이는 상호 호적에 입적을 시키고 내 마누라가 상호만 살아와 상호의 아이를 임신하면 내 호적에 넣자고 말이다.
아무리 머리를 글려도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문제는 시작이었다.

가령 내가 죽고 상호가 살아 왔을 마누라가 상호의 몸을 쉽게 받아들이겠느냐가 문제였다.

상호가 나를 설득시키려 하였다.
근대에 입대하기 전에 마누라를 바꾸어 자 보자고 말이다.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말은 아니었지만 난 수긍을 하였다.
그런데 여자들 설득이 문제였다

좆 맛을 아는 여자 같았으면 설득이 쉬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상호 마누라나 우리 마누라 둘 다 좆 맛은 전혀 몰랐다.
씹을 하는 것은 아기를 만드는 일로만 알았다
의외로 상호마누라는 적극적이었다.
물론 자가가 흘린 말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는 손톱도 안 들어갔다.

고민 끝에 묘책을 쓰기로 하였다.
사실 내 좆이 상호 좆에 비하려 훨씬 굴고 길다.
그래서 그런지 잠자리에서 잠자리를 할 때만다 마누라는 아프다고 짜증을 부렸다.

나에 비하여 상호 좆을 말 그대로 좆만하다.
발기기 되어도 어른 엄지 크기였고 길이도 1/4정도 짧았다.
상호와 머리를 맞대었다.
나와 내 마누라가 밭을 매고 있을 때 우리를이 보라고 오줌을 싸며 먼 산을 보라고 말이다.
“여보 저런 좆으로 쑤시는데 민정 댁 무슴 말 안 하던가”약속대로 상호가 먼산을 보며 좆을 끄집어나고 오줌을 누는 것을 옥수수 가지 사이로 가리키며 말하자
“어머머 임자 것이 저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 꼬? 우리아버지 사람 봐도 잘 못 봤지”하고 말하면서도 마누라는 상호 좆에서 시선을 때지 못 하였다
“저렇게 작은 것이 그리도 부러워 보여”하고 묻자
“암요 부럽고말고요.”계속 보면서 말하기에
“그럼 우리 민정 댇 말처럼 이틀만 빠꾸어 자보자”하고 말하자
“.......................”마누라가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상화아 난 마누라를 바꾸어 자보기로 약속을 하고는 호롱불도 밝히지 않았다.

“인근아 거 그 굵고 긴 좆으로 우리 마누라 보지 걸레 만들지 말고 살살 해라 알았냐?”상호가 나에게 신신당부하자
“그래 그렇다고 눌어난 우리 마누 라 보지 맛없다고 하는 말은 피해라”하고 나도 당부하고 서로의 집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흘린 제안이라서 그랬던지 상호 마누라는 어둠속이지만 별빛으로 인해 사람 구별 정도는 할 만 한 빛에도 상호 마누라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서로 이해합시다.”하고 말하며 상호 마누라 옆에 앉자
“휴~전쟁이 원수지”상호 마누라는 자기가 흘린 말이 발단이 되었기에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아니 되레 고쟁이가 엉덩이에 걸려 잘 안 벗겨지자 스스로 엉덩이를 들어 올려주기까지 하였고 알몸이 되자 방바닥에 눕더니 그래도 여자인지라 남의 남정네 앞에서 알몸을 고스란히 보인다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한 손으로 보지둔덕을 가렸고 한손과 팔로는 젖가슴을 숨기고도 시선은 옷을 벅고 있는 아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 살아 돌아오면 이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나가 살아오지 못 하면 이렇게라도 하며 살아야겠지요?”하고 말하면 난 상호 마누라 몸 위로 올라갔고 
“.................”그러자 상호 마누라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내 목을 두 팔로 감았다.
“윽! 그이보다 굵고 커요”상호 마누라가 말하였다.
“싫어요?”천천히 움직이며 물었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찢어지진 않겠죠?”상호 마누라가 웃은 모습이 별빛 덕에 유난히 노랗게 보였다.

“민정 댁은 상호와 나와 다 해 봤으니 진실을 말 할 수 있겠죠?”마누라의 보지구멍에 비하여 한 결 빡빡함을 만끽하며 장난스럽게 묻자
“둘 다 살아오면 좋겠지만 딱 한 사람만 살아온다면 민정 댁은 누가 살아 왔으면 하나요?”하고 말하자
“호호호 예전부터 말에 있죠? 남자는 굴고 긴 게 좋다고 하잖았어요? 언니는 좋겠네 형부 코가 커서라고 호호호”역시 화끈한 민정 댁이었다.
우리 마누라 같으면 그런 말을 하기는커녕 하기만 하여도 옥을 직사하게 하고 남을 여자였다

“하하하 민전 댁 맛은 알아요?”떡칠을 하면서 물었다.
“조금 그런데 효정이는 하기 싫어 죽겠다던데요. 난 좋구만.”속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잘해서 둘다 살아오면 상호 몰래 줄래요”빠르게 떡칠을 하며 물었다.
“호호호 효정이도 지금 그이하고 이런 이야기 하고 있을지 모르겠죠?”민정 댁이 대답을 회피하였다.
“하하하 그럴지 모르죠? 나중에 어때요?”다시 물었다.
“안 발각 될 자신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 보세요”싫지 않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민정 댁과 난 거의 뜬눈으로 새우며 서로를 갈구하였지만 상호의 말에 따르면 내 마누라는 세 번을 하자 더 이상 못 하겠다며 말치는 바람에 하지 못 하다가 새벽에 이기척에 눈을 뜨니 내 마누라가 고쟁이를 입으려고 하는 손간 고쟁이를 당겨 겨우 한 번 더 하였다고 했다.

그렇게 상호와 난 마누라 바꾸어 자기를 이틀 하였고 상호가 내 마누라와 한 것에 비하여 거의 곱절 이상을 더하고도 상호와 마누라의 눈을 피하여 입대하기 전까지 아마 다섯 번은 더 한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들의 꼼꼼함은 남자의 그것에 비하면 정말 대단하였다.
이틀을 남편을 바꾸어 잤던 상호나 나는 서로 알겠다며 의리로 다짐을 하는 것으로 대충 얼버무리려 하였으니 여자들 특히 민정 댁은 그렇디 않았다.

남편들 더러 장에 가서 그 귀한 종이와 먹지에 연필은 지워 고치기 쉽다면서 잉크와 펜까지 사오라고 닦달을 부린 것이다 

준비다 되자 겨우 국민 학교 출신 주제의 내 남녀가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는 거의 한글을 이해하고 쓰로 읽기를 자유롭게 하는 애들이 허다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일제 밀기의 과도기에 조등학교를 다닌 우리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 그대로 개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개중에서 .좋금 낳은 사람이 민정 댁과 나였다.

0 Comments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