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일본ㄴ-25부
이야기 일본ㄴ-25부
이번엔 시영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차분했다.
[ 어디까지 알아? ]
[ 뭘 어디까지 알아요? 다 봤다니까요. 근데 이상해요.]
[ 뭐가? ]
[ 아까, 집에서도 그림을 보고있었거든요.]
[ 근데.]
[ 그림을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내려오셨어요.]
[ 응.]
[ 그림 앞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초리가 예사
롭지 않았었는데... 누나도 그런거 같아서요. 그림에 뭐가있어요? ]
시영 나는 눈을 찡그려 요오꼬의 눈빛을 흉내냈다.
[ 호호호호! 아무튼 그 안엔 들어가지 마. 나도 들어갔다가 혼난적 있었거든...]
[ 네에...]
[ 피곤할텐데 눈 좀 붙여. 새벽에 일어나야 해.]
[ 누구 만나야 하는거 아니에요? ]
[ 새벽에 만날거야.]
[ 새벽요? ]
[ 응. 자고 있어. 들어와서 깨워줄께.]
[ 어디 가게요? ]
[ 볼일 좀 보고 올께. 그리고 혹시 머리아프면 이 약 먹
어, 금새 나 질거야.]
티피티로 포장된 알약을 경대위로 던졌다.
[ 무슨 약인데요? ]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 괜찮아요. 그까짓것 운전했다고...]
[ 이따가 봐...]
[ 일찍 올거에요? ]
라는 물음에 그녀는 [ 몰라.] 라고
대답하며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방안은 금새 지루해졌다.
거실로 나가 티브이를 켰다. 막 아홉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모 부대 방문 연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일기예보가 끝나갈 때 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른 쪽 귓속으로 젓가락을 쑤셔넣어 반대편 골을 헤집는 것
처럼 찌익거리며 머리가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머
리통을 점령했다. 양 손바닥으로 머리통을 눌러대고 정신없
이 때려도 보았지만 깨져버릴것 같은 통증은 그칠줄 몰랐
다. 절로 눈물이 흐르는 아픔속에서도 의식은 살아있었다.
나는 방안으로 달려가 시영이 던져 놓고간 알약을 찾았다.
5분 쯤 지났을까,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사라졌다.
( 두통약. 장시간 운전해서 머리 아플지 몰라.)
머리가 아파질 것을 시영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
제도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것 같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홉개의 알약이 남은 티피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자정이 다 될때까지도 시영은 돌아오지 않았고 졸린 눈을껌뻑이며 나는 잠자리로 들었다.
한밤중이었다. 거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
어나 조명을 켜고 거실로 나갔다. 시영이 어떤 남자와 머리
를 맞대고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뒤를 향한 남자
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던 시영이 나를 보곤날카로운 조금 더 지체 되었으면하는 나의 바램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마치 성난 짐승처럼
흔들어 댔고 마지막 깨물림에 세상을 처음 본 연약한 열매는 터져버리고 말았다.
쭈욱, 쭉, 쭈욱 세번을 뽑아내며 털끝까지 힘이 들어간
나의 육신은 늘어지고 말았으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
영의 욕망은 더욱 사나와지려는 파도처럼 거칠게 물결을 일으키다 마침내 몸을 떨었다.
일을 마친 시영이 서두르며 말했다.
[ 어서 옷 입어. 빨리 가야돼.]